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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슬라이드 한 장에 흔들리는 K-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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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현 기자

승인 : 2026. 02. 05. 08:31

배다현
'deprioritised(우선순위 조정).'

슬라이드 속 단어 하나에 국내 바이오텍의 주가가 다시 한번 휘청였다. 글로벌 빅파마에 기술이전한 신약 파이프라인이 개발 후순위로 밀려났다는 우려가 번지면서다. 프랑스 사노피는 최근 실적 발표 자료에서 에이비엘바이오로부터 도입한 파킨슨병 치료제 후보물질의 개발 우선순위를 낮췄다는 점을 명시했다. 이로 인해 에이비엘바이오 주가가 하루 만에 17.92% 하락했다. 회사는 즉시 해당 파이프라인의 임상 개발이 중단되거나 계약이 해지 또는 파기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으나 빠르게 번지는 우려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최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주가가 글로벌 파트너사의 전략 발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와 같은 바이오텍 뿐만 아니라 국내 상위 제약사로 꼽히는 한미약품도 마찬가지다. 한미약품은 최근 파트너사의 전략 발표에서 기술이전한 파이프라인이 언급되지 않았단 이유만으로 주가가 하락하는 일이 발생했다. 기술이전 계약이 유효하고 개발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파트너사의 로드맵에서 후순위로 밀렸다는 인식만으로 주가가 요동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단순한 투자 심리 문제를 넘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처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국내 기업들은 후기 임상 비용을 자체 감당하기 어려워 신약 개발 초기 단계부터 기술이전을 택하는 일이 잦다. 글로벌 임상 진행에는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자금이 필요하지만 이를 직접 조달할 수 있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들은 신약 개발의 통제권을 글로벌 파트너에게 넘길 수밖에 없고, 이후 기업 가치까지 외부 전략에 종속되는 구조가 형성된다. 앞선 두 기업은 단일 파이프라인에 의존하는 곳들이 아니기에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볼 수 있으나 영세한 바이오텍들에는 더욱 치명적인 구조다.

물론 기술이전은 단순한 자금 조달 수단만은 아니다. 빅파마의 임상 설계 역량과 글로벌 네트워크, 규제 대응 경험을 활용해 개발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기술이전이 '전략적 선택'이 아닌 '유일한 생존 경로'로 고착화될 때 생긴다. 지금과 같이 기술이전 외 다른 성장 경로가 존재하지 않는 구조가 계속 이어진다면, 글로벌 혁신 신약의 가능성을 품은 파이프라인들도 오직 파트너사의 전략 변화에 따라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결국 필요한 것은 개별 기업의 한계를 보완하는 국가적 지원책이다. 기업이 기술이전을 유일한 선택지가 아닌 전략적 선택지로 삼고, 직접 후기 임상과 상업화하는 방안까지 고민할 수 있도록 하려면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최근 정부는 임상 3상 특화 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으나, 정작 다수 바이오텍이 자금 공백을 겪는 시기는 그보다 훨씬 앞선 1상 단계다. 이 단계에서 주로 기술이전이 이뤄진다. 임상 3상 진입 시에는 민간 투자를 받기가 수월해진다는 점에서 초기 임상 단계의 지원책 확대가 더 시급한 시점이다.

슬라이드 한 장, 단어 하나에 기업 가치가 흔들리는 시장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미래를 사실상 해외 기업에 맡겨온 정책 부재의 반영이다. 기술이전으로 산업의 가능성까지 함께 이전되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보다 근본적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배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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