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기자의눈] 나오는 대로 지르는 말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api1.asiatoday.co.kr/kn/view.php?key=20250525010012414

글자크기

닫기

김현민 기자

승인 : 2025. 05. 26. 06:00

JAPAN-POLITICS/RICE <YONHAP NO-2509> (via REUTERS)
에토 타쿠 전 일본 농림수산상이 19일 일본 도쿄에 있는 총리 관저에서 자신의 망언 논란에 관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회담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로이터 연합
20240118_065145881
일본의 쌀 파동이 해소되지 못한 채 누란지위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현지 전역이 원인 불명의 쌀 품귀에 따른 가격 폭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운데 에토 다쿠 농림수산상이 망언 논란으로 지난 21일 사임했다.

사흘 전 집권 자민당 회의 강연에서 한 발언이 논란을 자초했다. 당시 그는 "나는 쌀을 사본 적이 없다. 지지자들이 많이 보내줘서 팔 정도로 있다"는 말을 내뱉었다. 이 발언은 쌀값 때문에 예민해진 국민 정서를 들쑤셨다. 에토 농림상은 청중을 웃기려는 의도로 과장된 표현을 쓴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을 잠재울 순 없었고 직을 내려놓는 것으로 책임졌다.

개인적으로 학창시절 당시 나이가 지긋했던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인생사 진리가 떠오른다. "인간은 누구나 뱃속에 더러운 배설물을 품고 있지만 타인 앞에서는 옷을 입고 점잖은 척하며 산다." 실제로는 더 노골적이고 상스럽게 표현했지만 순화하면 이런 뉘앙스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화라는 과정을 겪는다.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신경쓰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나 해선 안 되는 것을 인지하고, 그에 맞게 말하거나 행동한다.

에토 전 농림상의 실언이 실제 본인의 뇌리에 박힌 사상일 수도 있고 우연히 떠오른 남의 생각을 전달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다 우연히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가 혼자만의 내밀한 공간에서나 끄집어내야 하는 것을 세상 한복판에서 내질렀다는 사실이다.

그 파장은 컸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언론을 통해 거듭 사과했고 자민당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 번 실추된 신뢰는 회복되기 어렵다.

쌀값이 1년 전에 비해 2배로 뛰었고 정부는 원인조차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면서 주먹구구식 해결책만 내놓고 있는 동안 서민들의 고통은 확산되고 있다. 이런 국가 위기 상황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의 발언이 나오는 근원은 도대체 무엇일까. 공감 능력과 배려심이 부족한 자는 공직자가 될 자격이 없다. 언행의 무게를 자각하고 타인의 처지에 공감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상에서 우리가 하는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가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게 된다. 또 우리는 어떻게 해야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지 새삼 자각하게 된다.

에토 전 농림상의 후임은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차남인 그는 한국에서 '펀쿨섹좌'라는 별명으로 알려졌다. 환경상 시절인 2019년 미국 뉴욕에서 진행된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의 전날 기자회견에서 기후 변화 문제에 관해 "이처럼 거대한 문제를 논의할 때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된다"는 무논리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아쉽게도 신임 환경상의 입 또한 신뢰가 가진 않는다.
김현민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