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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핵무기 가능하다”… 美 전략담론 변화, 한국 핵무장 논의의 문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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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필현 국방전문기자

승인 : 2025. 12. 14. 12:16

- 포린어페어스, 캐나다 일본 독일등 우방국 핵무장 허용론 제기
- 美 고립주의 확산 속 ‘동맹의 핵 역할 분담’ 신호…
- 한국 ‘핵 자강’ 논의 더는 금기 아니다
1214 독일캐 해굼장
늙고 노쇄한 미국(그림 전면 좌측 첫번째)이 독일(죄측 두번째), 일본(우측 두번째), 캐나다(우측 첫번째)에 핵폭탄이 터진 직후 나타나는 핵버섯구름을 선물하며, 미국이 캐나다, 독일, 일본에 핵폭탄을 보유해도 좋다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래픽=PADO
美외교정책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글로벌 외교안보 엘리트 담론의 심장부로 꼽히는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가 "캐나다·독일·일본의 핵무장은 오히려 국제질서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지난달 19일 공식 게재했다.

일본 핵무장을 사실상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 기고문은, 미국이 더 이상 모든 지역에서 '최종 핵보증인' 역할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주류 담론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여파는 결국 한국의 핵무장 논의를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로 끌어내리고 있다.

이번 기고문은 미국 오클라호마대 국제안보 전문가인 모리츠 그레프라트(Moritz S. Graefrath) 교수와 마크 레이먼드(Mark A. Raymond) 교수 두 명이 집필했다. 논문의 완성도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포린어페어스'라는 상징적 매체가 이 주장을 실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 내부에서 "신뢰 가능한 동맹이라면 핵무장을 통해 지역 방위를 분담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라는 사고가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님을 의미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일본에 대한 서술이다. 필자들은 일본의 핵무장이 동아시아 안정에 기여할 수 있으며, 미국의 확장억제를 보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한편 한국에 대해서도 핵무장 가능성을 언급하지만, 톤은 훨씬 조심스럽다. 일본은 '바람직한 선택', 한국은 '굳이 원한다면 가능한 선택'이라는 뉘앙스의 차이는 미국의 대일본·대한국 전략 인식의 위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 일본 핵무장론은 역사라는 거대한 변수를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1945년 이후 국제질서는 독일과 일본을 '전쟁 책임국'으로 관리해 왔고, 이들의 군사력 증강은 철저히 통제돼 왔다. 독일이 러시아 위협을 명분으로 재무장에 나섰지만, 유럽 내 불안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만약 독일이 핵무기까지 보유하게 된다면 폴란드·체코 등 주변국은 실존적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1214 독일캐 핵무장
포린어페어스, 캐나다 일본 독일등 우방국 핵무장 허용론 제기, 미오클라호마대학교의 두 명의 교수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이 에세이는 '캐나다, 독일, 일본의 핵무장'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2025,11.19일자 온라인판 갈무리
동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핵을 보유하는 순간, 그 최대 전략적 압박을 받는 국가는 한국이다. 한·일 간의 역사 문제, 영토 분쟁, 안보 인식의 간극을 고려할 때 '일본 핵이 한국을 보호할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성이 낮다. 오히려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 핵무장이 자국 안보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미국 담론의 흐름은 분명하다. 고립주의 확산, 재정 부담, 중국·러시아와의 동시 경쟁 속에서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안보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핵우산은 영원히 자동 제공되는 공공재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워싱턴 내부에서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선택지는 극도로 좁아진다. 미국의 확장억제 의지가 약화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이미 실전 배치 단계의 핵전력을 갖췄다. 일본의 잠재적 핵무장 가능성까지 더해질 경우, 중-러-북 그리고 일본과 한국등 동북아시아에서 한국만 비핵 상태로 남는 시나리오는 전략적 공백을 의미한다.

한국의 핵무장 논의는 더 이상 감정적·이념적 금기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 주류 담론이 먼저 "선택적 핵 확산"을 꺼내 들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이 변화에 수동적으로 끌려갈 것인지, 아니면 주도적으로 조건과 틀을 설계할 것인지다.

정성장 박사(세종연구소 부소장)는 14일 본지와의 취재를 통해 "미국의 주요 외교안보매체에서 캐나다와 전범국가인 독일과 일본의 핵무장에 우호적인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국제핵비확산체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들 국가들이 핵무장으로 나아갈 때 한국만 동북아시아에서 비핵국가로 남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도 수준의 핵잠재력(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재처리 능력)이라도 먼저 확보하기 위해 한미원자력협정의 조기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선언적 구호가 아니라 냉정한 '핵자강 전략' 계산이다. 미국이 '핵확산 금기'를 깨기 시작한 순간, 한국의 '핵자강'에 대한 침묵은 더 이상 전략이 될 수 없다.
구필현 국방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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