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원하지만 소통은 싫어하는 현대인의 모습, 담담하게 그려내
훈훈한 가족 드라마는 아니지만, 불편한 진실 깨닫게 해주는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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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개봉한 '내 말 좀 들어줘'의 연출자는 마이크 리 감독이다. 켄 로치 감독과 더불어 영국 리얼리즘 영화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지는 거장이며,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자 그해 열린 제49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비밀과 거짓말'과 2004년 제61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베라 드레이크'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영국 노동 계급의 고단한 삶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리 감독과 로치 감독은 공통 분모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대비되는 측면도 있다. 로치 감독이 좌파적인 시각으로 격정적인 분위기의 서사를 구축해 보는 이들의 감정을 건드리려 애쓰는 반면, 리 감독은 에피소드 위주의 병렬적인 전개 방식으로 심심하면서도 오래 가는 여운을 추구하는 편이다. 지난해 뉴욕·시카고·LA 비평가협회에 이어 올해 런던·전미 비평가협회에서도 여우주연상을 모두 휩쓴 '내 말 좀 들어줘' 역시 리 감독의 이 같은 특징이 아주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건네고자 하는 이야기는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버거워'란 홍보 문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남의 속을 박박 긁는 거친 언행으로 일관하지만 속으로는 타인의 관심을 은근히 갈구하면서도, 막상 손길이 다가오면 거북이처럼 딱딱한 등껍질 속으로 숨어들어가기 일쑤인 현대인의 소통 부재가 거리를 유지한 채로 담담하게 그려진다.
특히 상처받기 싫어 일부러 먼저 상처주는 것처럼 여겨지는 '팬지'와 관계 개선의 희망을 무심히 놓아버리는 '팬지' 남편의 모습은 SNS 등 각종 네트워크로 촘촘히 엮일수록 고립과 소외를 자처하고 때로는 근거없는 비난과 모략까지 서슴치 않는 요즘 사람들의 이중적 행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훈훈한 감동으로 마무리되는 가족 드라마를 기대하고 극장에 갔다가는 낭패를 볼 게 뻔하다. 하지만 원제인 '하드 트루스'(Hard Truths)가 의미하듯, 불편해 마주하기 싫은 진실도 결국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진실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