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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격동의 시대: 현장에서 길을 찾다] 빨라지는 관세협상의 시계(時計), 아직은 오리무중인 시계(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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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6. 25. 17:47

조성대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
6·3 조기대선으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여한구 본부장이 임명됐다. 여 본부장은 새 정부의 전략과 철학을 반영해 기존 한·미 양국 실무진 간의 기술협의 사항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협상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7월 8일 자정으로 예정된 상호관세 유예기간 만료는 관세협상의 시계(時計)가 빠르게 돌아가야 한다고 재촉할 것 같지만, 아직 트럼프 2기 관세조치의 향방과 시계(視界)는 오리무중에 가깝다.

트럼프 행정부는 4월 2일 57개국(EU 27개국을 단일국으로 간주)을 대상으로 상호관세 조치를 발표했다. 그런데 상호관세 부과일이 되자 전격적으로 90일간 연기하며 그동안 주요국과 협상할 것을 밝혔다. 90일이란 관세협상의 시계가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은 최근 유럽에 GDP의 5%를 방위비로 지출할 것을 요구했지만, 상호관세 부과 대상국에 대해서는 공통된 요구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동안 미국은 미국의 무역적자가 큰 이유로 관세와 비관세장벽이 있음을 지적했다. 중국과의 전략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첨단산업 공급망 관련 수출통제나 경제안보 전략의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에 제조업 투자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런 발언들은 일종의 협상 요구안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90일로 설정된 관세협상 시계를 가동하며 트럼프 정부는 상대국들이 협상안을 들고 앞다퉈 워싱턴을 찾아올 것으로 구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 80일간 벌어진 상황은 그 예상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되었다. 협상 초기 일본 등 일부 국가가 서둘러 미국과 대화에 나선 것은 사실이지만, EU, 중국, 캐나다 등은 보복조치를 도입하거나 도입할 의사를 밝혔다. 미국은 도리어 협상안을 들고 온 일본에 구체적인 협상에 나서기보다는 성의가 부족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보복국가에는 맞보복하기에 급급했다. 미국도 내부에서 협상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후문도 나왔다.

게다가 일부 국가들은 국내 정치 일정으로 미국과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워, 초반 관세협상 시계는 느리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도 탄핵심판 이후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면서 현실적으로 적극적으로 협상하기가 어려웠다. 실무 차원에서 양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본격적인 협상을 준비하는 기술협의를 추진해 왔기 때문에 바로 심도 있는 협상에 돌입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나, 10여 일 남은 상호관세 유예기간 안에 양국이 상호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합의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7월 20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일본도 우리와 상황이 비슷하다. 현재 248명의 참의원에서 자민당은 공명당과의 연정으로 145석 다수를 유지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미국과 관세협상에 임했다가는 자칫 야당에 공세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참의원 선거 패배는 자칫 이시바 내각의 입지를 급격히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런 국내 정치 사정을 고려할 때 일본 정부는 일부 혼란을 겪더라도 선거 이후 합의를 도출하는 순서로 시계를 돌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관세협상이 7월 8일안에 마무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은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으며, 근거도 다음과 같이 확인되고 있다. 첫째 미·영 간 무역합의다. 영국은 상호관세 대상국도 아니지만, 양국은 5월 8일 영국산 자동차 쿼터와 미국산 농산물 시장개방을 주내용으로 하는 합의를 발표했다. 중요하고 더 어려운 이슈인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서는 계속 협상해 나가기로 했다. 두 번째 근거는 미·중 간 협상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미·중 양국은 상호관세 이후의 양국 간 보복조치를 철회하고 상호관세 일부를 90일간 연기하며 추가협상하기로 합의했다. 세 번째 단서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의 발언이다. 베선트 장관은 선의로 협상하는 국가에 대해 상호관세 적용유예 시한을 추가 연장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볼 때 주요국들은 용이한 일부 쟁점에 대해 먼저 합의를 도출하고 추가 협상을 이어간다는 전략을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한 우리 정부도 국내 정치 사정을 미국에 설명하고 더 나은 협상을 위한 추가 연장이나 일차 합의를 모색하는 방식을 고려해 봄직하다. 대통령을 포함한 새 정부 주요 인사들이 한·미 동맹을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있는 만큼, 관세협상에서도 기 싸움이 아니라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려는 의지를 진지하게 보여준다면 미국도 더 나은 협상결과를 위해 수용할 가능성이 상당할 것이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세협상 시계가 일부 조정(연장)되더라도 이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본다. 미국은 2026년 11월 중간선거를 치른다. 임기 2년인 연방하원은 435명 전체가 선거 대상이고, 임기 6년인 상원은 100명 중 3분의 1이 선거 대상이다. 여당인 공화당은 상원 53석, 하원 220석을 차지해 각각 3석, 2석 우위의 다수당인 상황이다.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가시적 성과를 거둬야만 11월 선거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 상반기 중 무역에서, 하반기에는 감세 등 국내 경제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시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내 정치시계(時計)에 쫓기는 미국이 언제든 예상 밖의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이는 곧 관세협상의 시계(視界)가 안갯속에 갇힐 수 있음을 한 번 더 상기하며, 우리 정부 협상팀이 절묘한 지혜를 도출해 내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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