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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격동의 시대 : 현장에서 길을 찾다] 판이 흔들린다…위기와 기회의 한 끗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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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6. 04. 17:47

양은영 (KOTRA 지역통상조사실장)
양은영 (KOTRA 지역통상조사실장)
미국의 트럼프 2기 정부는 시작하자마자 각종 통상조치를 쏟아 놓으며 전 세계를 긴장시켰다. 중국을 집중 겨냥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캐나다와 멕시코 대상 이른바 펜타닐 관세,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자동차 및 부품 관세에 이어 4월 초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자, 그야말로 글로벌 경제는 충격에 빠졌다. 하루 이틀 만에 취소가 되거나, 일부 유예되는 소동을 겪긴 했지만,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 정책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GATT 체제를 거쳐 1995년 WTO가 출범하면서 확산된 자유무역은 관세를 낮추는 노력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보호주의 추세는 이와 다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듯하다. IMF의 구랭사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80년간 이어져 온 세계경제 시스템이 재편되고 있다"는 말로 이 현상을 요약하기도 했다.

미국의 통상정책은 글로벌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 4월 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발표하자 전 세계의 주가, 환율이 요동쳤고, 물가상승과 경기둔화 압박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었다. 관세 이외에 다시 어떤 격랑이 몰려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지난달 말 미국 국제무역법원이 상호관세 부과는 근거법인 국제비상경제수권법(IEEPA)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의 정책에 대응하는 다른 국가들의 움직임도 변수다. 일본, 대만 등은 관세전쟁을 치르는 기업들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각종 지원책을 쏟아 놓는다. 우리가 경쟁해야 하는 반도체, 철강 등 제조업에 이들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은 신경 쓰이는 일이다. EU는 속도를 조정한다는 이유로 예정되었던 탄소국경제도(CBAM) 등을 완화하기로 했으나 그 이면에는 관세인상에 처한 기업들의 호소가 있었을 것이다.

멕시코와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산 우회수출 기지로 활용되는 것을 막고, 대미 수출이 막힌 저가 중국 제품이 자국 시장으로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멕시코는 섬유·의류제품과 국제 택배에 새롭게 관세를 매기기로 했고, 베트남과 태국 등은 수입품 통관 시 원산지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이 중국산 철강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수출기업들은 관세 등으로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경기둔화 조짐이 나타나는 데다가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경쟁국 기업들과도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특히 중국 제품들이 아세안, 유럽 등지로 쏟아지면서 경쟁여건은 한층 어려워졌다. 중국산 대량유입을 막으려는 몇몇 국가들의 규제는 우리 기업과 제품에까지 적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최근 포드는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일부 모델의 가격을 대당 600~2000달러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도 연간 관세비용이 510억 달러나 상승한다면서 가격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눈치다.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쉬인(SHEIN)은 미국 내 제품 가격을 최고 377%까지 인상하면서 화제가 되었고, 월마트는 이미 가격인상을 예고했다.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기간이 끝나기 전에 물건을 미국으로 갖다 놓으려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해상운임이 상승하는 추세도 만만치 않다. 한때 절반 이상이 비어있다던 미국 서부 항구가 이제는 자리잡기 경쟁이 한창이라고 한다.

이런 와중에도 특수는 있다. 인도에서는 스마트폰 대미수출이 4배 늘어나는 등 미국의 대중견제 정책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대만의 한 나사 제조 중소기업은 미국으로부터 저가 제품 주문이 늘어나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소문이다. 미국 정부의 고위층이 직접 찾아와 협력을 논의하는 우리 조선산업은 미국 시장의 최대 수혜분야로 꼽힌다.

우리에게 유망시장으로 떠오르는 곳은 더 있다. 글로벌 제조업 허브 기능을 강화하는 아세안, 인도, 멕시코 등지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IT, 모빌리티, 전력 인프라, 의료바이오 등 분야에서 이미 우리 기업들이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탈석유 제조업 국가를 꿈꾸는 UAE, 이집트, 사우디 등 중동 지역에서도 에너지, 전기차, 물류 등 분야에서 우리 기업의 참여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최첨단 제조업 기술국인 독일에서는 생산 자동화 및 효율화에 참여했던 우리 기업이 기술력을 뽐내며 호평을 받은 사례도 있다.

우리 제조업 경쟁력과 우수 인재, 유연한 해외 마케팅 능력은 최고 수준이다. 우리 기업들은 이 능력을 바탕으로 숱한 위기 속에서도 기회시장에 도전하여 성공을 만들어 왔다. 산업화를 꿈꾸는 저개발국뿐 아니라,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와 글로벌 기업들도 우리 기업을 협력 파트너로 선호한다.

위기와 기회는 서로 등을 맞대고 같이 찾아온다. 기존의 판이 흔들리고 있는 요즘이야말로 위기에 발 빠르게 대처함으로써 기회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 기업과 정부, 유관기관이 팀 코리아로 힘을 합쳐 흔들리는 판에서 새로운 강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양은영 KOTRA 지역통상조사실장

<필자 소개>
양은영 실장은…
서울대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핀란드 헬싱키 경제대에서 MBA를 받았다. 코트라 통상협력실장을 거쳐 지역조사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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