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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AI 시대, 대한민국 제조업이 살아남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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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6. 03. 21:54

김성중 넥스톰 대표이사
김성중 넥스톰 대표이사
최근 산업계와 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AI를 선점한 국가가 될 것"이라는 담론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트렌드를 넘어, AI 기술이 국가 안보와 산업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에 진입했음을 뜻한다. 특히 제조업과 AI의 융합은 단순한 생산성 개선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재편을 의미하는 구조적 전환의 출발점이다.

대한민국은 오랜 시간 동안 제조업 중심의 수출 기반 경제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고도화된 자동화 경쟁, 그리고 탄소중립 전환이라는 외부 변수들은 기존 제조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속에서 AI를 결합한 스마트 제조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러나 그 길이 쉬운 것은 아니다. AI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과 제조 현장 사이에는 여전히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 많은 AI 스타트업들이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조 도메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실효성 있는 솔루션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제조 현장에서는 필요한 AI 기술을 보유한 파트너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기존 제조 공정에 대한 유지보수성과 검증되지 않은 기술의 불확실성에 대한 부담으로 혁신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AI 스타트업 육성 정책 또한 현실과의 괴리가 크다. 유니콘 기업 육성이라는 거대 담론을 중심으로 한 정책 목표는 자금지원과 같은 외형 중심의 지원에 머물고 있으며, 실질적인 기술 상용화나 제조현장과의 연결에는 미흡하다. 좋은 기술은 있으나, 영업능력의 부족으로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하지 못한 여러 AI 스타트업들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성장 가능성을 실현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정책적 기술과제'로 전환하는 시스템 또한 많은 아쉬움이 있다. 많은 정부 과제가 이론적 타당성과 보고서 중심으로 기획되며, 실제 현장에서는 사용되지 못하는 기술이 양산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정부의 다양한 정책지원에도 불구하고 산업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 중심의 기술 발굴'이다. 제조 현장에서 일어나는 실제 문제를 중심으로 기술 과제를 정의하고, AI 기술을 가진 다양한 팀이 해당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스타트업에 R&D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문제를 정의하고 실증하는 구조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최근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중견기업과 스타트업을 연결해 주는 사업이 다양한 기관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오픈 이노베이션' 역시, 기업 간의 매칭과 소액의 실증 사업비만을 지원해 주고 있으며, 이마저도 매칭된 소수의 기업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뿐이다. 여기서 한발만 더 나아가서 참여하는 모든 스타트업들이 각자 작은 기회와 성취를 얻을 수 있어야 하며, 지속적인 사업으로 연결되기 위한 파이프라인 구축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제조전문가+기술전문가+현장검증팀'으로 구성된 기술 발굴단을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들은 전국 제조현장을 순회하며 문제를 발굴하고, 이를 기술 미션으로 구조화하여 실증 가능한 형태로 전환한다. 그리고 이 기술을 바탕으로 경진대회형 인큐베이팅 플랫폼을 운영하면, 단기 수익을 넘어서 중장기적 시장 경쟁력을 검증할 수 있다. 즉,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 줄테니 필요한 기술 개발해서 알아서 매출 올리고, 잘 살아 남아라"의 방식이 아닌, "좋은 기술이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면, 정부가 초기 영업을 도와줄 테니, 같이 잘해보자"와 같은 개념의 지원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기술과 도메인을 동시에 이해하는 멘토링 체계, 공공 조직의 실질적 매칭 기능 강화, 정책의 실행을 전담할 민간 기반 조직 설립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단순한 기술개발 지원이 아닌, 실제 기술의 실증→현장 적용→시장 확산까지 이어지는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기술은 결국 현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보고서 안의 기술이 아니라, 생산라인 위에서 작동하는 기술이어야 한다. 정부는 기술을 만들도록 도와주는 것을 넘어, 기술이 쓰이게 만드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스템의 중심축을 '지원'이 아닌 '연결'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빈 땅 위에 매일 아침 좁쌀을 뿌린다고 철새도래지가 되지 않는다. 먹이와 안식처가 풍부한 '갯벌'과 같은 생태계를 조성해야 철새들이 찾아온다. 기술 창업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단기지원만으로는 기업도 기술도 정착하지 못한다. 기술을 실증하고, 현장과 연결하고,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설계해야 한다. AI 기반 제조 혁신 생태계를 위한 전략적 '제조AI 갯벌'을 지금 조성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세계 제조 강국의 자리를 다시 확보하고, AI 시대에 산업 주권을 지켜낼 수 있는 길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중 넥스톰 대표이사

<필자 소개>
김성중 넥스톰 대표이사는...
AI 제조업 30년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아주대학교 비즈니스 애널리틱스학과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등에서 각종 자문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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