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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이 아닌 곳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의 힘 - 플라잉트리 낭독극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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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5. 12. 13:23

배우의 목소리로 완성되는 무대, ‘어디든 극장’으로 다시 돌아오다
베스 헨리와 마리아 아이린 포네스의 명작을 감성 깊은 낭독극으로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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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트리가 선보인 낭독극 '불가사리는 물고기가 아니라 동물이다'의 한 장면. / 사진 플라잉트리
아시아투데이 전형찬 선임 기자 = 극장이 아닌 장소에서, 무대장치나 조명 없이 오직 배우의 목소리와 텍스트만으로 완성되는 공연. 낭독극은 최소한의 무대와 최대한의 상상력을 무기로 관객의 감정과 상념을 자극하는 공연 형식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이 '목소리의 극장'은 한국 공연예술계에서도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 삶의 공간 속으로 예술을 들여오는 이 흐름은 더 다층적인 감상 경험을 제공하며, 관객과 새로운 방식으로 호흡하고 있다.

이 흐름의 중심에 서 있는 단체가 극단 플라잉트리다. 2013년 창단한 플라잉트리는 "배우가 선 그곳이 무대"라는 모토 아래, 살롱극과 낭독극, 팟캐스트, 거리 공연 등 다양한 형식의 무대를 실험해 왔다. 특히 '희곡이 들린다' '살롱극 페스티벌' '오픈 살롱 프로젝트' 같은 브랜드 콘텐츠를 통해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지속해왔으며, 문화 접근성이 낮은 공간에서도 예술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플라잉트리가 예술가의집 공동기획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오픈 살롱 프로젝트 - 어디든 극장'을 선보인다. 카페와 라운지 등 비전통적 공간에서 낭독극을 선보이는 이 프로젝트는 텍스트에 집중한 무대 구성과 감동후불제라는 관람 방식으로 관객과 더욱 밀도 있는 만남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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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트리가 선보인 낭독극 'Crimes of the Heart(마음의 범죄)'의 한 장면. / 사진 플라잉트리
첫 번째 작품은 14일 선보이는 베스 헨리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낭독극 'Crimes of the Heart(마음의 범죄)'다. 1978년 발표돼 1981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미국 남부 미시시피주의 작은 도시 해즈버그를 배경으로 세 자매 레니, 메그, 베이브의 삶을 조명한다. 각기 다른 상처를 품고 살아가던 자매들이 막내의 살인미수 사건을 계기로 고향집에 모여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과 서로를 마주하고, 화해와 치유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성 중심의 서사지만 이는 곧 한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던지는 근원적 질문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탐색이기도 하다. 연출은 허부영이 맡았다. 오태은, 이선구, 차혜선, 천유진, 최나은, 허부영이 출연해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전한다.

두 번째 공연 '불가사리는 물고기가 아니라 동물이다'는 오는 19일부터 21일까지 관객과 만난다. 원작은 쿠바계 미국 극작가 마리아 아이린 포네스의 Mud로 1984년 오비어워드를 수상하며 그 예술성을 널리 인정받은 작품이다. 문맹 상태의 여성 주인공 메이가 글을 배우며 독립을 꿈꾸지만 주변 인물들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좌절을 겪는 과정을 날카롭고도 치열하게 그려낸다. 삼각관계, 빈곤, 무지, 욕망이 뒤얽힌 황폐한 현실 속에서 여성이 자유를 갈망할 수 있는 지 질문을 던지며 인간 내면의 본능과 사회 구조의 폭력을 함께 응시한다. 연출은 장용철이 맡았다. 허부영, 김미나, 천유진, 이선구, 최담, 허현정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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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트리가 선보인 낭독극 '불가사리는 물고기가 아니라 동물이다'의 한 장면. / 사진 플라잉트리
플라잉트리는 그간 '희곡이 들린다' 시리즈를 통해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십이야 같은 고전을 비롯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창작 희곡까지 낭독극으로 꾸준히 소개해 왔다. 특히 2023년 '괜찮아, 다 해!'로 제3회 치유예술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며 실험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바 있다. 이번 예술가의집 프로그램은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관객의 일상 가까이에 있는 공간 속에서 연극을 접하고 텍스트의 깊이에 귀 기울이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공연은 모두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 라운지에서 진행되며, 감동후불제로 운영된다. 이어지는 6월과 8월에는 낭독극 'He&She', 연극 '인스턴트 마더' 등이 예정돼 있어, 플라잉트리의 '오픈 살롱'은 앞으로도 다양한 이야기와 실험을 품은 무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예술과 공간, 텍스트와 사람. 플라잉트리의 낭독극은 그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봄, 조용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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