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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도쿄·봄·음악제 리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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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5. 04. 13. 10:11

바그너가 추구한 미래지향적 예술 체험, 콘서트 오페라 '파르지팔'
키즈 오페라 '어린이를 위한 파르지팔'도 인상 깊어
콘서트오페라 파르지팔 (C)NaoyaIkegami
콘서트오페라 '파르지팔'의 한 장면. (C)NaoyaIkegami
도쿄 하루사이 프로그램의 하나로 지난달 30일 우에노 도쿄 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콘서트 오페라 '파르지팔'은 바그너가 음악극에서 추구했던 이상을 구현한 무대라고 할 수 있다. 폴란드 지휘자 마렉 야노프스키의 지휘와 NHK 교향악단의 연주로 이뤄진 이날 오페라에서 바그너가 추구한 미래지향적 예술을 직관적으로 체험했다.

지난해 여름,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가서 미국의 제이 세이브 연출, 스페인의 파블로 헤라스 카사도가 지휘한 오페라 '파르지팔'을 감상했다. 바그너의 오래된 성전에 3D 기술을 도입한 최첨단 프로덕션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3D 기술과 영상 효과가 돌출된 현란한 원색 무대디자인이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바그너가 1849년 '미래의 예술작품'에서 주장했듯 예술 상호 간 서로 빼앗기만 하고 주지는 않는 '이기주의'가 드러난 탓에, 시각적으로는 무척이나 화려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음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고 예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작품이 되었다. 그런데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현지의 '파르지팔' 공연에서도 별반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아시아의 콘서트 오페라에서 받게 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이날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과 마찬가지로 공연 시작 전 관악기 주자들이 야외 발코니에 나와 '파르지팔' 중 성배의 동기를 연주했다. 관객들은 물론이고 벚꽃놀이를 나온 우에노 공원 방문객들의 시선도 사로잡아 페스티벌다운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성공적인 이날 공연의 1등 공신은 마렉 야노프스키가 이끄는 NHK 교향악단이다. 마렉 야노프스키와 NHK 교향악단은 2010년부터 시작된 이 음악제의 바그너 시리즈를 맡고 있다. 지난해에도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콘서트 오페라로 공연해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NHK 교향악단은 지난 몇 년 새 단원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져 30~40대가 주축을 이룬다. 이들의 뛰어난 테크닉과 젊은 에너지는 야노프스키의 신중하고 무게감 있는 지휘와 좋은 조화를 이뤘다.

콘서트오페라 파르지팔 (C)KojiIida
콘서트오페라 '파르지팔'. (C)KojiIida
NHK 교향악단의 역량은 전주곡에서부터 드러났다. 현악의 촘촘한 밀도와 응집력이 놀라웠다. 이 오케스트라가 현악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목관과 금관 파트 또한 이에 못잖은 실력을 선보였다. 관악기의 비중이 큰 바그너의 작품을 소화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특유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시작된 연주가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장대한 대작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뒤로 갈수록 더욱 탄탄한 사운드로 큰 감동을 주었다.

마렉 야노프스키는 시종 장엄함과 긴장이 느껴지는 '파르지팔'을 완성했다. 성악과 관현악, 합창이 혼연일체로 어우러지도록 조율하고, 성악이 아닌 관현악이야말로 드라마의 내면을 표현하는 도구라는 바그너의 이상을 느껴지게끔 음악을 구성했다. 게다가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정하게 5시간에 가까운 공연을 이끌었다.

관현악의 공훈이 크지만 이날 성악가들 또한 탁월한 기량으로 전막 오페라와도 같은 연기력과 가창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구르네만츠 역의 베이스 타레크 나즈미를 시작으로 쿤드리 역의 메조소프라노 타냐 아리아네 바움가르트너는 풍부하고도 강한 성량과 표현력으로 객석을 압도한 전주곡의 분위기를 이어갔다. 여기에 지난 3월 우리나라에서 리사이틀을 열기도 했던 바리톤 크리스티안 게르하허는 고급스러운 질감의 음성과 빼어난 연기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암포르타스 왕의 고통과 상처를 노래했다. 파르지팔 역의 스튜어트 스켈레톤은 처음에는 발성이 다소 정제되지 않았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강력한 헬덴 테너의 모습을 보여줬다. 악역인 클링조르 역의 우리나라 베이스 심인성도 사악함과 중후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연기와 노래로 큰 갈채를 받았다.

이날 도쿄 오페라 싱어즈가 맡은 합창도 뛰어난 연주력으로 공연을 뒷받침했다. 일부 합창단은 5층 객석에 배치하며 공연의 입체감을 잘 살렸다. 이처럼 합창단의 배치라든가 세심한 조명으로 콘서트 오페라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3막 마지막 부분 '성금요일의 주제'가 연주되고 종결로 향할 때 점점 밝아지던 조명은 결국 객석 전체를 밝혔다. 성배의 신성한 빛이 객석까지 비추며 구원의 희열을 함께 느끼길 바란 것 같았다. 고조되던 객석의 감동 또한 이때 절정을 향한 것 같다. 굳이 의상과 무대디자인을 갖추지 않더라도 관현악과 성악만으로도 높은 완성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삼 바그너가 추구했던 음악극의 본질을 찾아볼 수 있었다.

어린이를 위한 파르지팔 2(C)TairaTairadate
'어린이를 위한 파르지팔'의 한 장면. (C)TairaTairadate
하루 앞선 29일 도쿄 마루노우치 스미모토 은행 동관 로비에는 가설극장이 들어섰다. 도쿄 하루사이의 협력사 중 하나인 스미모토 은행은 넓고 환한 로비를 극장을 위한 공간으로 제공하며 공연 중에는 로비의 큰 창을 모두 커튼으로 가렸다. 이곳에서 바그너의 증손녀이자 현재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인 카타리나 바그너가 연출한 '어린이를 위한 파르지팔' 공연이 있었다.

공간이 협소한 까닭에 무대와 객석은 마주 하지만 오케스트라는 무대 뒤에서 화면을 통해 소통하며 연주했다. 이 공연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과 제휴한 공연으로 카타리나 바그너가 직접 도쿄에 와서 연출을 하고 이날도 무대 인사를 했다. '파르지팔'의 복잡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는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큰 뼈대만 남겨 재구성했고, 무대장치나 소품, 분장도 아동용 음악극으로 바꿨으나 바그너 음악의 주요 동기들은 그대로 연주됐다. 파르지팔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방심해서는 안 돼!'라는 주문을 함께 외치도록 유도하며 어린 관객들의 참여를 끌어올렸다. 분명 많은 개작이 이뤄졌는데도 '파르지팔'의 원형과 메시지가 전달되도록 한 구성이 인상 깊었다.

도쿄 하루사이의 매력은 공연이 기간 중 한 번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몇 차례 반복된다는 것에도 있다. 음악제 동안 갈 수 있는 날짜를 선택하여 볼 수 있는 것이다. 음악제 기간이 긴 덕분이지만 유럽 오페라극장처럼 같은 공연을 몇 차례 반복하는 것은 바쁜 도시 관객들에게는 큰 장점일 수밖에 없다. 이번 음악제는 오는 20일까지 계속된다. 바그너를 지나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이탈리아 음악들이 기다리고 있다. 매년 진지하고도 수준 높은 구성의 음악제에 아름다운 우에노의 봄 풍경은 보너스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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