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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 동덕여대와 서부지법, 그리고 탄핵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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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혁 기자

승인 : 2025. 02. 19. 18:00

불법폭력사태로 파손된 서부지법<YONHAP NO-4087>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내부로 난입해 불법폭력사태를 일으킨 지난달 19일 오후 서부지법 벽과 유리창 등이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임상혁_증명사진
임상혁 사회부 기자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찬바람이 아니었다" 미취학 아동조차 아는 이 문장은 이솝 우화에 나오는 한 이야기입니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겉옷을 벗기는 걸 목표로 태양과 바람이 시합을 벌였는데, 찬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옷을 부여잡고 놓지 않던 나그네가 태양이 강해지자 더위에 옷을 벗었다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죠. 싸움에 영리하게 임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른 교훈도 보입니다. 거언미래언미(去言美來言美).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모두가 모르는 것도 현실 같습니다. 근래 우리 사회에 생긴 갈등들, '강대강' 외에 다른 구도를 본 기억이 있으신가요. 이념을 두고 네 편, 우리 편을 나누고 소통과 화합은 전무한 현실이 이젠 너무 익숙합니다. 비단 정치권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만연해진 갈등 분위기는 사회 구성원들 마음 한구석에도 자리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11월 뉴스를 도배한 것은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반대 논란'이었습니다. 남녀공학 전환을 검토하던 학교를 향해 재학생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냈었습니다. 학생들이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다퉜는지,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 기억하시나요? 학생들이 농성을 벌이거나 학교 곳곳에 래커 칠을 했던 장면만 기억하실 겁니다. 언론들도 초기엔 학생들의 주장을 전했지만, 나중엔 '청소비용이 얼마가 든다더라' '누가 배상을 해야 한다더라' 등만 보도했습니다.

다음 달엔 비상계엄 선포가 있었습니다. 이후 지난달 19일 새벽 일부 시민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많은 경찰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법원은 시설물 등 파괴로 6억~7억원 규모의 피해를 입었고 난입자들이 부르짖으며 찾던 영장전담 판사는 경찰에 신변보호를 신청했습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해당 사건에 대해 그들이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대해선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억에 남은 건 자극적인 장면뿐이었습니다. 강경한 행동에 강경한 대처만이 있기도 했습니다. 결국 동덕여대는 학생들과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고, 서부지법 난입자들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어갔습니다. 현재로선 두 사태 이후 남녀공학 전환 논의의 중지도, 윤 대통령 구속 취소도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일각에선 "강한 행동을 해야 사람들이 주목이라도 한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만 않습니다. 다가올 삼일절과 관련해 3·1 운동의 의의를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비폭력 평화 시위로 전개된 3·1 운동은 그 당시 다른 식민지 국가들에게도 귀감이 돼 세계적인 독립운동에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은 독립했으며, 우리는 이날을 국경일로 삼아 기리고 있습니다.

서부지법 사태가 있기 직전 한남동 집회에서는 탄핵 반대, 찬성 양측간 충돌 대신 각 진영별로 후원자들이 따뜻한 커피·어묵·라면 등을 지원하거나 난방버스를 운영했던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자진 출석'을 위해 관저 밖으로 나왔을 때, 울고 있는 보수 측 시민에게 진보 측 시민이 다가가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다 잘될 거다"라며 위로를 건넨 장면은 마음 가득 깊은 울림을 줬습니다.

최근 한 인터넷 게시판에는 헌법재판소 난동을 모의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서부지법 사태와 관련해 "국민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평화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해 달라. 물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공수처의 강경한 체포 의지에, 결국 자진해서 집행을 받았으며 지금은 법원과 헌재의 절차에 임하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태도가 꼭 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강'에는 '강'이 붙습니다. 전달하고픈 메시지도 왜곡됩니다. 다시금 의사 전달의 방식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임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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