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데스크 칼럼] 정치꾼과 화이부동(和而不同)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api1.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218010010295

글자크기

닫기

김시영 의학전문기자

승인 : 2024. 12. 18. 10:25

김시영(증명)1
누군가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힘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신념의 힘'이라 했다. 200년 가까이 지속된 십자군 전쟁, 36년간 이어진 프랑스 종교전쟁의 기저에도 종교적 신념이 자리한다. 잘못된 신념이 낳은 종교전쟁의 후과는 처참했다.

오늘날 신념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정치이념' '여론' '국민의 명령' 등으로 환치돼 살아 숨쉰다. 유능한 정치인이나 간교한 정치꾼 모두, 신념으로 포장된 군중심리 활용에 능하다. '정의와 공익을 위하느냐(정치인)' '사익과 불의에 타협하느냐(정치꾼)'의 차이만 있을 뿐, 대중의 환심을 먹고 산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정치인은 사상과 이념을 끊임 없이 대중에게 주입하기 위해 확언을 반복한다. 확언은 간결하고 지속적일수록 파급력이 크다. 잘 빠진 광고카피처럼. 리더십 혹은 카리스마로 포장된 독재적 권력도 서슴지 않는다. 독재적 권력은 열성 추종자 확보 조건이다.

조선 전기 양대 정치세력은 초기 공신 중심의 훈구파와 지방 유학자 중심의 사림파다. 집권 경쟁에서 승리한 사림파는 동인·서인, 남인·북인으로 갈린다. 남인과 서인은 정치·사상적 다양성으로 조선 후기 정치·사회 변혁을 추동했지만, 극한 대립과 반목으로 노론·소론으로 붕당하면서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효종과 효종비의 상복 규정을 놓고 남인과 서인이 첨예하게 맞섰던 예송논쟁에 이은 경신환국은 남인이 쇠퇴하고 서인이 득세하는 터닝포인트였다. 집권 서인 세력은 가차 없는 숙청으로, 몰락한 남인에게 권력의 비정함을 시전했다. 피의 보복으로 점철된 붕당정치의 폐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작 '로미오와 줄리엣' 서사의 기둥도 로미오의 몬테큐 가와 줄리엣의 캐플릿 가의 반목과 갈등에 기인한다. 당시 유럽 정치 명가들은 반대 당파와의 결혼은 물론, 같은 샘물조차 먹지 않았을 정도로 서로를 배척했다고 한다. 동서 불문, 당파싸움에 국민 등골만 휘어갔다.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너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극단에 빠져, '대한민국 국새' 쟁탈에만 골몰하는 자는, 정치인 아닌 정치꾼이다.

서애 류성룡은 운암잡록에서 '국론이 양분돼 서로 원한을 품고 공격하며 편가름이 극화하는 것을 망국의 지름길'이라 경고했다. '동(同)은 물에 물탄 것 같고, 화(和)는 국 맛을 조화하는 것 같다'는 소동파에게서, '주장이나 의견은 달리하되 이를 조화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지혜를 냈다. 여 없는 야는 의미 없다. 반대가 있어야 찬성도 빛난다.

금배지 단 정치꾼의 난장 놀음에 신념은 당파를 넘어 광기가 됐다. 조선 망국의 씨앗이 된 '붕당정치 폐해'와 400여년 전 임진왜란 극복 정신 '화이부동'마저 소환해야 하는 현실이 엄중하다. /김시영 의학전문기자
김시영 의학전문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