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윤석명의 연금개혁 이야기] 재정추계기간 70년, 연금을 통한 법적 약탈(Legal plunder) 진원지다!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api1.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124010011980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11. 24. 17:22

윤석명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1998년 법 개정으로 국민연금의 건강상태를 평가하기 위한 재정계산제도가 도입되었다. 5년 주기의 첫 번째인 2003년 재정계산에서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처음 재정계산을 시행하다 보니 외국 운영사례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필요성으로 인해 일본 후생노동성에도 다녀왔다. 후생노동성의 준이치 사카모토(坂本 純一) 연금수리과장은 일본 상황을 상세히 알려 주었다.

당시 논란이 많았던 사안이 적정 재정추계 기간과 재정안정 평가지표였다. 제도발전전문위원회 간사위원이던 필자는 일본 사례 등을 거론하며 최소 80년 이상의 재정추계기간을 주장했다. 반면에 대다수 위원은 훨씬 짧은 기간을 선호했다. "내일 일도 모르는데, 80년 후 일을 제대로 알 수 있겠나?" 재정추계기간을 짧게 하자는 위원들의 논리였다.

더 짧게 기간을 잡아야 한다는 대다수 위원들로 인해 10년 줄어든 70년으로 추계기간이 결정되었다. 100년을 재정추계기간으로 설정한 일본에 비해 우리의 70년이 너무도 짧다고 평가해 온 필자는 2013년 3차 재정계산부터 추계기간을 100년으로 늘리자고 주장했다. 2018년 4차 재정계산에서도 30년을 더 늘리자고 했다.

4차 재정계산은 우리 연금 논의가 어디까지 퇴보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요구했던 100년으로 재정추계기간을 연장하는 안은 거부된 반면, 재정평가기간을 대폭 단축하자는 주장이 받아들여져서다. 재정추계기간이 70년임에도 재정안정 달성 여부를 평가하는 기간을 기존의 70년에서 40년이나 단축한 30년으로 하자는 내용이 재정안정방안 '가안'으로 결정되었다. '가안'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해식 박사(현 한국자활복지개발원 원장)가 제안했다. 반면에 70년 재정평가기간을 고수하면서 보험료 인상과 핀란드식 자동조정장치를 결합한 필자 재정안정방안은 '나안'으로 순서가 밀렸다. 그것도 당초 '1안'과 '2안'이던 명칭에 문제를 제기하여 '가안'과 '나안'으로 바뀐 것이다.
4차 재정계산에서 재정평가기간을 대폭 단축한 재정안정방안이 등장하게 된 것은 연금을 더 줄 수 있다는 논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40년 단축한 2048년이 기금 소진 이전 시점이다 보니 재정 불안의 위기감을 희석할 수 있어서였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4개나 되는 안을 제시하면서도 유독 필자 제안의 재정안정방안만을 배제시킨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일이 더 노골화된 것이 2023년의 5차 재정계산위원회와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 논의 결과다. 재정계산위원회와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 위원들이 압도적으로 선호한 필자 제안의 재정안정방안인 '소득대체율 40%-보험료 15%안'이 시민대표단의 토론 의제에 포함되지 못해서다. 너무도 문제가 많은 룰 세팅으로 이해관계자가 선호하는 단 두 안만이 시민대표단 선택지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관련 내용도 크게 왜곡시켰다. 실상은 후세대 부담을 더 지우는 안인데도 기금 소진 시점이 몇 년 연장되는 것을 들어 재정안정방안이라고 국민과 언론을 기망해서다. 공론화위원회 논의 결과와 지난 5월의 제도 개편안은 모르핀 주사를 놓아 현재 의사 결정을 주도하는 세대가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더 줄 수 있게 하자는 거다. 국민연금지급보장 조항은 만들어 놓을 테니 이들이 사망하면 후세대가 알아서 하라는 거다. 전 세계적으로 이처럼 무책임하게 연금을 운영하는 나라, 적어도 우리 주된 경쟁 상대 국가 중에서는 없다.

후세대에게 부담을 더 떠넘기는데도 이를 재정안정방안이라고 기망할 수 있는 배경은 짧은 재정추계기간에 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기간을 10년만 더 늘려도 지난 5월의 연금개편 논의가 얼마나 후세대를 약탈하는 개편안인지 더 확실해진다. 일본처럼 100년으로 30년을 더 늘리게 되면 대국민 사기극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는 독일 인구·수리통계·경제학자인 렉시스가 Lexis diagram을 통해 설파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특정 평가 시점에서 보험료를 내 온 기간들은 모두 재정평가에 반영된다. 반면에 평가 기간이 짧아질수록 연금 수급자와 가입자의 예상 연금액, 즉 장래 지출액의 일부만 반영하게 되어 낙관 편향적인 평가를 유도한다.

'낸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 연금제도'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평균 수명도 빠르게 늘어나는 국가에서는 짧은 재정평가 기간의 부정적인 면이 가장 커진다. 낸 것보다 더 많이 받아 재정 불안정이 심해지는 것에 더해, 예상보다 연금 받는 기간이 대폭 늘어나 재정 불안정을 더욱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우리나라인지라 상황의 심각성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 출생률이 세계 최저 수준이다 보니 더욱 그러하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보험료를 조금 올린다는 이유를 들어 연금 더 주겠다는 것이 지난 5월 연금 개편안의 핵심이었다. 그러니 경제학자 바스티아가 언급한 법적 약탈이 연금이란 이름으로 자행된다고 강조하는 거다. 세대 간 부양이라는 철 지난 논리를 들면서 태어나지도 않은 세대에게까지 약탈을 자행하려 했다. 5년 주기인 우리와 달리 매년 재정추계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는 미국은 '지속가능한 지불능력'을 활용하여 무한기간까지 재정평가를 실시한다(2024년 재정추계 보고서, 209-211). 이는 매년 영속적으로 지속이 가능한 재정안정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연금 논의가 얼마나 한심한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연금 개혁 논의에 참여한 당사자들은 자신의 과거 행적까지 책임져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장을 달리해 온 전문가들로 인해 우리 연금 논의가 더 혼탁해졌기 때문이다. 모든 연금 논의는 상세한 회의록을 작성해 즉시 공개하고, 유튜브로 생중계하되 영구 보전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입장이 바뀌어 왔던 자칭 전문가의 민낯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해야 연금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을 통한 법적 약탈을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명 (보건사회硏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