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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의 안보정론] 핵문제와 미국 대선 그리고 진퇴양난의 한국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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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0. 0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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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한국의 안보를 진퇴양난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 이슈들이 많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사태, 멈추지 않는 북한의 도발, 출산율 저하와 병역자원 부족, 분열된 국론과 대립 일변도의 국내 정치, 경제와 에너지에 국한되지 않는 탈원전 후유증 등 곳곳에 복병들이 매복해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핵문제, 미 대선,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 등은 대표적인 복병들이다.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핵에 더하여 중국핵과 러시아핵의 그림자까지 어른거리지만, 한국은 확장억제 체제에 머물러야 하는지 아니면 더 강력한 핵옵션을 결단해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신임 일본 총리가 미일 핵공유, 아시아판 나토 등을 거론하자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미국 대선도 그렇다. 누가 이기든 한미동맹은 첩첩산중이다. 북한의 '통일 포기·두 국가' 선언에 이은 "그러면 우리도 통일을 포기하자"는 종북 이념가들의 주장도 소모적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 이렇듯 한국을 시험에 들게 하는 요인들은 많지만, 한국이 가야 하는 대로(大路)는 정해져 있다.

◇북핵의 그림자와 중국핵의 그림자
신냉전 속에서 핵질서는 유례없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러시아의 핵사용 위협이 반복되고 있으며, 유엔과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체제는 국제규범을 무시하고 핵증강 또는 핵보유를 강행하는 '불량국가들'을 제지하지 못하며, 북·러 간의 불법적 무기거래에도 속수무책이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자제와 새 농축시설 공개를 병행하면서 내년에 출범할 미국 정부와의 '핵국과 핵국 간'의 대등한 협상에 대비하여 몸값을 올리고 있고, 남쪽을 향해서는 '핵탄두의 기하급수적 증가'와 전술핵 실전배치로 압박하고 있다. 즉, '동맹 이완과 대남 압박'이 동시 진행 중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워싱턴선언과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 2024년 일체형 확장억제 합의 등으로 북핵 억제력 강화에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래서 필자를 포함한 전문가들은 수년 전부터 미 전술핵의 한국 또는 인근 배치, 한미 핵공유, 동맹조약 개정 등을 촉구해 오던 중이었다. 핵심은 현 확장억제가 앞서가는(proactive) 대책이 아닌 뒤따라가는(reactive) 대응 체계라는 점과 그러면서도 핵위협이 진화하는 속도와 정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북쪽에서는 북핵 그림자보다 더 거대한 중국핵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중국은 1964년 핵실험 이래 최소한의 제2격 능력, 즉 수백 기의 핵무기만으로 미·소와의 전략적 안정을 꾀하면서 '선제 핵사용 포기(NFU)'를 표방하는 '최소 핵억제' 전략을 수십 년 동안 고수해 왔었지만, 시진핑 집권과 함께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청산하고 '핵굴기'에 나섰다. 시 주석은 제2포병을 로켓군으로 개편하고 지상·공중·해저 발사 미사일을 현대화하면서 중국판 '핵3축 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했으며, 최근에는 300여 개의 대륙간탄도탄(ICBM) 사일로를 건설 중이다. 스톡홀롬평화연구소(SPIRI)는 중국의 핵탄두가 약 500기에서 2035년에는 1500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렇듯 중국은 미·러와 대등한 핵초강대국을 향해 질주 중이다. 중국은 외부 위협 억제, 핵심적 국가 이익 수호 등 '안보수요'를 핵증강의 이유로 내세우지만, 탈냉전 후 미국이 핵무기 80%를 감축했고 '핵심적 이익'이라는 것도 대만 통일, 남중국해 영해화, 경제영토 확대 등 팽창주의 야심과 관련한 것들이어서 중국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성큼성큼 다가오는 중국의 핵그림자가 위협인지 그리고 위협이라면 당면 위협인지 또는 미래 위협인지에 대해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 야릇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대선 이후의 한미동맹
미국 대선에서 어느 쪽이 이기든 한미동맹 앞에 놓인 과제들은 가볍지 않다. 민주당이 '국제관계 중시와 동맹 중시'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어 카멀라 해리스 후보 당선 시 한미관계의 무난한 재출발이 예상되며, 최근 제11차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을 타결한 것은 좋은 전조다. 하지만 오바마(2008~2016)에서 바이든(2021~2024)으로 이어진 민주당 집권 동안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약화하였고,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발생하고 이슬람국가(IS)가 창궐했다. 국방예산 삭감과 군비축소를 추진했고 '전략적 인내'를 명분으로 북한의 핵증강과 핵실험에 대해 결정적인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기조들은 바이든 시대에도 재현되어 '핵무기 역할 축소'가 강조되었고, 미국은 함정, 잠수함, 전투기 등의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동유럽, 중동, 중남미 등에서 전쟁이 발생하거나 러시아, 중국, 이란 등 '신(新) 악의 축' 국가들이 공백을 메우는 안보지형 변화도 초래되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외교·안보 경륜이 없는 해리스가 집권하여 오바마-바이든을 승계하면 세계는 더욱 위험해질 것으로 우려한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이기면 러시아 압박, 핵태세 강화, 고강도 이란 제재, 친서방 중동국들과의 관계 강화 등이 예상되지만,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재부팅되면서 신고립주의가 확산할 것으로 우려된다. 북한에 대해서는 '당근과 채찍'을 다시 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방조했던 과거 사실에서 보듯, 트럼프 행정부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보다는 미국 국익이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방위비 분담금의 5배 인상을 요구했던 사례에서 보듯 동맹국을 경제적 경쟁자로 보려 할 것이며, 또다시 주한미군 철수가 화두로 등장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스스로의 국방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국방비를 부담하고 '동맹에 편승하는 국가안보' 이미지를 불식시킨다면 장기적으로는 동맹 관리가 더 용이해질 수 있다.

◇혼란과 망설임 속에서도 가야 할 길 찾아야
그럼에도 한국이 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통일 문제는 헌법대로 하면 된다. '자유민주 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명시한 제4조,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권리에 대한 침해를 금지한 제10조와 제37조 등 헌법이 어떤 통일을 어떻게 추진하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안보협력에서 양편으로 나뉘어져 다툴 필요도 없다. 100년 전과는 반대로 지금은 안보 위협이 북쪽에서 내려오기 때문이다.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대북용 미 전술핵 할당 또는 재배치, 핵공유, 한국 핵무장 및 핵동맹 등 현재 및 미래의 전략들을 놓고 지체 없이 동맹 협의에 들어가야 한다. 공부를 게을리하다가 갑자기 입시일을 맞는 학생처럼 되지 않으려면 핵무장 잠재력 배양은 지금 착수해야 한다. 좌고우면할 시간적·공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핵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도 그렇다. 양편으로 갈라져 논쟁할 이유가 없다. 어느 쪽이 승리하든 한국은 미국의 새 정부와 친구가 되어야 하며, 그것이 자강(自彊)만으로는 충분할 수 없는 지정학적 여건이 강요하는 숙명이다. 누가 집권하든 그 정부의 장점을 활용하면서 단점을 보완하는 자세로 동맹을 꾸려야 한다.

하지만 특히 명심해야 할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동맹국들을 위해 피를 흘리거나 돈을 쓰는 것을 싫어하는 신고립주의는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리지 않는 전(全)미국적 현상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그래서 미국의 새 정부와의 안보 공조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안보에 더 큰 비용과 노력을 투입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대만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인 한국의 국방비 인상률이 물가 인상률에 미치지 못하고 방위력 개선비보다 전력 운용비를 더 많이 인상하는 모습으로는 유사시 한국을 위해 싸워줄 친구들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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