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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안전에 중요한 곳에 규제자원을 집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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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9. 23. 06:07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2000년 겨울 영국에서는 독감이 대유행이었다. 병원은 환자들로 만원이었고 심지어 복도에까지 간이침대를 들여놓고 진료를 봐야 했다. 그렇게 해도 영국의 의료 시스템은 환자를 모두 수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속출했다. 이것은 당시에 큰 사회 문제가 됐다.

어느 TV방송에서 의료 당국자가 나와서 이에 대해 앵커와 대담하는 시간이 있었다. 앵커는 이 사태의 원인과 책임에 대해서 날카롭게 질문했다. 그러나 당국자는 "제게 주어진 자원의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라고 얘기했다. 당당했다. 만약 우리나라의 경우였다면 당국자는 뭔가 죄지은 듯한 표정으로 연신 사과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국자가 신(神)이 아니지 않는가? 주어진 자원을 넘어서는 것을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국민의 정서는 아마도 그런 공무원을 수용하지 못할 것이다. 공무원은 줄어야 하고 철밥통을 비난하면서도 공공부문은 절대적으로 오류가 없고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된다고 여긴다. 이런 면에서는 한마디로 철딱서니가 없다. 공무원도 인간이고 우리나 우리의 자녀도 언제든지 그 자리에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 철없는 얘기를 다 들어주다 보면, 정말 사소한 곳에 정부의 자원이 엄청나게 투자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이것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고 한다.

원자력 안전에 대해서 이런 것을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안전목적상 중요한 곳에 규제자원이 집중되고 덜 중요한 것에는 규제자원을 과감히 빼도 된다. 그것이 허락되지 않으면 규제자원을 늘여야 할 것이다.
필자의 짧은 공무원 경험으로는 공무원들은 늘 바쁘다. 특히 중앙부처의 공무원은 대부분 급여이상으로 일한다. 그런데 막상 업무의 일부를 없애자고 하면 반대하는 게 또 공무원이다. 마치 그 업무를 놓치면 자기의 공무원 인생이 끝나거나 사회가 통제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처럼 여긴다. 그것이 규제 완화가 안 되는 이유다.

30년 전에 핵연료 검사라는 것이 있었다. 원전에 공급되는 핵연료를 규제기관이 검사하고 그것에 대해서 필증을 주는 일이었다. 법률적 기반을 둔 규제도 아니었고 관행적으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명의로 행해지는 규제였다. 필자는 이것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핵연료는 어차피 사업자의 인수검사를 받게 되어 있고 이 단계에서 걸러진다. 또 원전에 납품되는 모든 물건을 규제기간이 다 감독할 필요는 없다. 사업자에게 총괄적인 책임만 물으면 된다. 이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그 규제를 없애려 하자 담당자는 극렬하게 반대했다. 어느 날 검사필증을 준 핵연료에 문제가 생긴 것을 빌미로 핵연료 검사제도를 폐지했다. 그리고 지난 30년 동안 핵연료 검사필증이 없어서 문제가 된 적은 없다.

원자력 시설은 늘어나고 업무는 늘어난다. 시설이 많다보니 바람 잘 날이 없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규제 인력도 사람인지라 문제가 생기면 짜증이 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바쁜 이유가 중요하지 않은 것을 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 해봐야 한다. 실무자는 익숙해진 업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절대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가 조정을 해줘야 된다. 그러나 그것이 규제의 독립성이니 뭐니 하는 이유로, 또 담당자 외에는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방치되면 규제자는 자기 편한 일만 하게 돼있다. 그것이 국민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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