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이영조 박사의 정치경제 까톡] 날개 있어도 추락한 아르헨티나… ‘오지 않는 미래’ 브라질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api1.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827010014779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8. 27. 17:22

슬픈 라틴아메리카 잃어버린 100년 (1)
2024080801000794500048121
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천혜의 조건에도 파산한 아르헨티나

2001년 12월 18일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여느 해 같았으면 축제 분위기였을 이곳에서 대규모 폭동이 발생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슈퍼마켓을 습격한 시민들에게 경찰이 발포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이튿날 신문의 한 귀퉁이를 장식하는 데 그쳤을 사건이었지만, 이날은 달랐다. 경찰의 발포는 가스가 가득찬 방에 성냥불을 그은 것처럼 대규모 유혈 폭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오랜 경제적 어려움으로 누적된 시민들의 불만이 일시에 폭발하면서 폭동은 걷잡을 수 없게 퍼져 나갔다. 이튿날 속수무책의 상태에서 델라루아 대통령이 사임을 발표했다. 이후 열하루 동안 다섯 명의 대통령이 줄줄이 사퇴하는 극도의 혼란상이 빚어졌다.

다른 나라도 아닌 아르헨티나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아르헨티나가 어떤 나라인가? 소와 양의 숫자는 국민 수 대비 몇 배인지 알기 어렵고 세계 최대 밀 수출국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이런 나라에서 먹을 게 없어서 폭동이 일어나다니 말이 되는가?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위기는 이때가 처음도 아니었고 끝도 아니었다. 아르헨티나는 첫 번째 후안 페론 정부(1946~1955년) 이래 크고 작은 위기에 시달렸고 급기야 1980년대 초 발생한 국제외채위기 이후에는 더욱 심각한 위기를 경험했다. 그 정점이 2001~2002년의 위기였다.

이후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1차산품 수요가 급증하면서 경제가 약간의 회복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계속된 페론주의(포퓰리스트) 정권의 집권으로 재정 팽창은 계속되었다. 당연히 고율의 인플레이션이 뒤따랐다.
경제파탄에 정통경제정책을 표방한 우파 마크리 정권이 2015년 들어서기도 했지만 긴축정책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2019년 다시 페론주의자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 결과 경제는 더욱 침몰했고 국제채무 불이행 사태 또한 계속되었다. 인플레이션은 더욱 심각해졌다. 그 결과 2023년 11월 선거에서 우파의 하비에르 밀리에가 새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이미 페론주의에 중독된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어디까지 그의 고통스러운 충격요법을 감내할지는 미지수다.

사실 아르헨티나는 온화한 기후, 기름진 땅, 풍부한 자원을 가진 그야말로 천혜의 땅이다. 당연히 대공황 전까지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 나라였다. 세계 5대 부국 혹은 10대 부국으로 꼽혔고 문자해득률이 90%를 넘어섰던 나라였다. 어느 모로 봐도 선진 부국이었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남미판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였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엄마 찾아 3만리'라는 만화 영화는 1880년대 아르헨티나에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 나선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가 아르헨티나 이곳저곳에서 겪게 되는 여러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그만큼 아르헨티나는 가난한 유럽인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다.

그랬던 아르헨티나가 먹을 게 없다고 폭동이 일어나고 국제채무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당연한 의문이다. 전문가들도 실로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아르헨티나를 만들었지만 동시에 아르헨티나 사람도 만들었다." 천혜의 조건에서 나라를 이토록 엉망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르헨티나 사람들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다.

◇아직도 오지 않는 미래, 브라질

사실 아르헨티나가 가장 극단적인 예이지만 아르헨티나만 그런 게 아니다.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웃한 브라질도 한때는 잘나갔지만 그 잠재력이 충분히 살아나지 않고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비근한 예로 20세기 지휘사에서 푸르트벵글러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룬 이탈리아의 토스카니니가 지휘자로 데뷔한 곳이 브라질이다. 1886년 한 오페라단에 첼리스트 겸 합창 부지휘자로 입단한 열아홉 살의 토스카니니는 브라질에서 '아이다' 공연에 참가했다.

이때 연습 도중 지휘자가 악단과의 불화로 공연 직전에 갑작스럽게 사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다급해진 오페라단에서는 부지휘자에게 지휘를 맡겼지만 청중들로부터 심한 야유를 받았다. 이어서 지휘봉을 잡은 합창 지휘자도 역시 쫓겨났다.

그러자 극장 측에서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평소 지휘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져 있던 토스카니니에게 지휘를 맡겼다. 지휘대에 오른 토스카니니는 리허설 한 번 없이 악보를 덮고는 암보로 이 대곡을 성공적으로 지휘해 일순간에 유명해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토스카니니의 판타지 같은 출세담이 아니라 당시 브라질이 유럽의 유명 오페라단이 출장 공연을 갈 만큼 잘나가는 나라였다는 점이다.

이런 브라질이었기에 흔히 브라질은 '미래의 나라'로 불렸다. 하지만 그 미래는 문자 그대로 '아직은 오지(來) 않고(未)' 있다. 아무튼 한때는 북미보다도 잘살았던 중남미의 나라들이 지금은 칠레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 잠재력을 살리지 못한 채 성공보다는 실패의 상징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매주 함께 중남미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보자.

이영조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