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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칼럼] 적정 책임 물어야 ‘무책임’과 ‘행동 기피’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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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2. 19. 17:54

김이석 논설실장
논설심의실장
어떤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으면, 그 행동에 따라 나타날 결과를 심사숙고하지 않고 일단 일을 벌이는 무책임한 행동을 유발하기 쉽다. 그래서 책임을 물리는 것이 중요하고 보통 책임에 비례해서 권한이 주어진다. 그런 원리를 잘 알았던 초기 여성인권운동 선각자들은 아내가 저지를 죗값을 남편이 치르게 하는 당시의 법과 관행에 거세게 저항했다. 그래서는 여성이 온전한 책임을 지는 '개인'으로 우뚝 설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임의 부과도 적정 수준이어야 한다. 너무 책임을 물리지 않으면 무책임한 행동을 유발하지만, 너무 과도하게 물리면 아예 책임질 행동을 기피한다. 이런 책임과 권한의 비례 정도는 지금까지는 민간, 특히 기업 부문에서는 책임을 과중하게 물린 반면 공공부문에서는 책임을 너무 과소하게 묻는 경향이 있었다.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사업을 벌였다고 해서 그런 사업을 추진한 정치인에게 법적·경제적 책임을 물은 적은 없다. 이에 반해 기업인에 대해서는 원청기업이 하청기업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한다든지, 중대재해처벌법을 50인 이하 사업장에도 전면 적용할 예정이다. 이로 인해, 행동을 기피할 가능성, 즉 아예 사업을 접을 가능성이 예상되어 이의 보완과 유예를 경제단체들이 호소하고 있지만 정치권, 특히 야당이 외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공공부문의 면책 경향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정책 추진 당시 여러 상황들을 검토해 볼 때 실패가 불 보듯 뻔한데도, 사실을 왜곡해서 무리하게 정책을 집행한 결과 시민의 편익을 도모하기는커녕 시민들의 세금만 낭비했다면, 이에 대해서는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넘는 책임을 물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재판부의 판례가 나왔다.
바로 경기도 용인시의 경전철 사업에 대해 당시 사업을 입안하고 추진했던 용인시장과 터무니없는 수요 예측을 한 전문기관과 연구원에 대해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는 서울고등법원 행정 10부(재판장 성수제)의 판결이 그것이다. 당시 수요 예측은 하루 평균 이용객을 14만명으로 예측했으나 실제로는 9000명에서 3만명에 그쳤고, 기획예산처의 90% 최소수입보장 조건 축소 의견도 묵살됐다고 한다. 그 결과 시공사에게 2023년까지 벌써 4293억원을 지급했고, 2043년까지 1조원 이상 더 지급해야 한다고 알려졌다.
이런 사례 말고도 최근 공공부문의 행동에 드러난 '책임'과 관련된 문제가 최근 1심 재판에서 무죄로 선고를 받은 '삼성물산 합병' 사건이다.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해서 참여연대와 민변이 이를 부당합병, 회계부정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고발하고 검찰이 기소한 19건의 혐의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은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고, 나머지 피고인 13명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를 두고 최준선 교수는 "근 9년 동안 낭비된 국력과, 매주 1~2회씩 경영권 승계 사건 재판에 출석해야 했던 한국 최대기업 최고 경영책임자를 묶어둠으로써 발생된 경영상의 손실, 삼성의 브랜드 가치에 대한 타격 등은 수십조 원에 이를 것"이라면서 이런 손실에 대해 누가 배상해야 하느냐면서 이렇게 묻고 있다. "참여연대, 민변, 검찰은 배상책임이 없는가?"(아시아투데이, 2024.2.12. "삼성물산 합병사건 무죄 피고인에 대한 보상은 누가 하나?")
검찰은 즉각 항소했지만, 이것이 과연 '책임 있는' 결정인지 아니면 '오기'가 발동한 게 아닌지 검찰이 다시 한번 신중하게 검토하기 바란다. 항소 여부는 검찰이 결정할 일이지만, 그 활동에 필요한 재원은 국민의 세금이고 이 결정을 하는 검찰 소속 개인의 자금이 아니기 때문에 자칫 무책임하게 항소를 남발할 유인이 내재해 있다. 이 사실을 검찰은 잘 되씹어보기 바란다. 사실 검찰의 역할도 결국 우리 사회에 범죄와 같은 특정 행동에 적절한 책임을 물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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