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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칼럼] 태평양 전쟁 발발일에 상기하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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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3. 12. 03. 18:06

이효성
아시아투데이 논설고문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과는 달리 일찍이 강력한 중앙 정부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대신 일본은 중세부터 각 지역의 귀족이나 토호 세력, 심지어는 사찰이 무사단을 형성하여 무력과 침탈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곧 정의인 나라가 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은 국내 사정이 어려워지거나 어떤 위기가 닥치면 그 사정이나 위기를 내부적으로 또는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희생양을 구하거나 외부 약탈이나 침략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습성이 있다.

일본이 그런 침략성으로 국제적으로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13세기부터다. 바로 이때부터 한반도와 중국 해안에 일본 해적이 무수히 출몰했기 때문이다. 일본 규슈 지역과 쓰시마섬의 일본인들이 한반도와 중국 연안 지역을 습격하여 약탈하는 해적질을 일삼았다. 이들이 동아시아 역사에 등장하는 이른바 왜구(倭寇, wako)다. 왜구는 13~16세기 한반도와 중국의 연안을 무대로 약탈을 일삼던 일본 해적을 지칭한다. 이들은 14세기 중엽 동아시아의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창궐했다. 이들의 뒤를 댄 것은 대체로 관(官)이나 거상들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0년 수십 개의 전국 다이묘들을 제압하고 통일 정권을 수립했다. 그러나 수많은 전란으로 무사들의 불만이 컸고, 일부 군대는 반란에 동원되는 등 통일체제가 안정되지 못했다. 게다가 삼포왜란 후 조선과 명이 면포 수출량을 통제하자 일본의 면포 가격이 크게 뛰었고, 도자기 기술도 필요로 했다. 그래서 도요토미는 무사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봉지가 부족한 부하 제장들의 여력을 해외에서 사용하고, 면포를 싼값에 조달하고 도자기 기술도 들여오기 위해서 조선을 침공했다. 그러나 그는 조선 침공으로 조선에 형언할 수 없는 피해를 끼치고 스스로는 멸문지화를 당했다.

19세기 구미 열강에 의한 서세동점의 시대에 일본은 구미 열강의 개항 강요와 불평등 조약에 먼저 노출되고 그 피해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 피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하루빨리 열강이 되어 개항과 불평등 조약을 강요할 희생양을 찾았고 그 첫 번째 대상이 조선이었다. 조선은 흥선대원군이 일본의 메이지 유신보다 앞선 1863년 집권하여 여러 내정 개혁을 단행했으나 대외적으로는 쇄국정책으로 일관한 나머지 개항과 근대화에서 일본에 뒤처진 데다 뒤이은 고종과 민비는 무능하고 부패했다. 일본은 제국주의가 되어 청일전쟁, 노일전쟁을 거쳐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들었다가 마침내 합병하여 식민지화했다.
일본의 침략성은 한국의 합병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일본은 1929년 세계 대공황에 따른 자국 경제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그리고 1941년(12월 7일) 태평양 전쟁까지 일으키며 침략을 확대했다. 일본은 만주, 중국 본토는 물론 '동남아공영권'이라는 이름으로 동남아 여러 국가들을 점령하고 식민지화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국가 총동원령에 의해 한국 가정에서 식량과 가재도구를 전쟁물자로 강탈했다. 만주 하얼빈에서 731부대에 의한 생체실험, 중국 난징에서는 30여 만명의 민간인 학살, 위안소 운영, 포로 학대, 식인 등의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 일본의 야만성을 이해하기 위해 미 정부의 의뢰로 《국화와 칼》(1946)이 저술되기도 했다.

한때 일본인들이 세계 유명 관광지에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에도 하얼빈 731부대의 기념관은 말할 것도 없고 나치가 유태인을 대량으로 학살했던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기념관에도 일본인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일본은 한국의 주권을 무시한 '한일의정서'(1904년 2월)를 강요한 후 러일전쟁의 와중에 자기네 지도에도 엄연한 한국령으로 그려왔던 독도를 일본에 편입시키고선 지금도 자기네 것이라고 우긴다. 일본은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침략성에 반성이 없다는 증거다. 그러니 우리는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것을 반복하게 된다(Those who do 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는 경고를 음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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