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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단일 종으로 전 지구에 흩어진 지구인들, 문명의 새벽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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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8. 04. 17:37

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4회>
송재윤1
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이 연재물은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송재윤 교수가 외계인에게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다. 매우 독특한 상상으로 들리겠지만 '지구 중심성을 벗어나 행성 사이'의 관점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만큼 매우 좁은 민족이나 국가를 떠나 인류의 보편적인 '객관적'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겠다는 뜻이다.
송재윤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테네시 주립대학교를 거쳐서 2009년 이후 맥마스터 대학교에서 중국 근현대사와 정치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11세기 중국의 국가개혁과 유가경학사의 관계를 조명한 학술서 Traces of Grand Peace: Classics and State Activism in Imperial China(Harvard University, 2015)와 국적과 개인의 정체성을 탐구한 영문소설 Yoshiko's Flags(Quattro Books, 2018) 등이 있다. 현재 캐나다에서 중화제국사의 정치 담론을 집약한 학술서적 Share and Rule과 "슬픈 중국"의 제3권 '대륙의 자유인들 1976-현재'를 집필하고 있다. <편집자 주>

선사시대 동굴벽화
호주 카카두 국립공원(Kakadu NP, Australia)의 선사 시대 동굴 벽화. wiki commons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코끼리는 크게 세 개의 종으로 나뉜다. 아프리카에 두 개의 종이 살고 있고, 인도에 또 하나의 종이 살고 있다. 이들은 생긴 모양도 크게 다르지만 서로 교배를 해도 생식능력을 갖는 후손을 생산하지 못한다. 비슷한 동물이지만 그들은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물학적으로 서로 다른 종으로 진화했다. 학술용어를 쓰자면, "종 분화(speciation)"의 결과이다.

코끼리와 달리 오늘날 지구 전역에서 80억을 인구를 자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구인들은 모두가 해부학적 동일성을 보이는 단일 종이다. 물론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들처럼 오늘날 지구인들과 서로 다른 종(種)의 지구인들이 살다 간 흔적이 있지만, 모두가 멸종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지구인의 유전자 속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일부 섞여 있다는 연구가 적잖게 발표되어 있지만, 99.99% 이상의 지구인들이 모두 같은 종이라는 점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피부색, 눈 색깔, 머리카락의 색깔 등의 차이는 종적 차이라 할 수가 없다.

지구인들은 유전적으로 사촌 관계에 있는 193종의 다른 유인원과는 달리 털 없이 실상 거의 벌거벗은 몸으로 두 발로 걷고 뛰며 수렵과 채집의 방식으로 아프리카 사바나를 누비면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을 살아왔다. 지구인의 등정(登頂, ascent) 과정은 실로 희귀하고도 돌발적인 성공 사례다. 고인류학의 일반적 이론에 따라 그 과정을 요약하자면, 30만년 전에서 20만년 전 사이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호모사피엔스는 7만5000년 전에서 5만년 전 사이 북아프리카를 벗어나 불과 수만년 만에 지구 전역으로 흩어져 갔다. 에티오피아 부근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아라비아반도로 넘어간 지구인들은 해안선을 따라 꾸준히 옮겨가서 빠르면 1000 년 만에 호주 대륙에 당도했다.
아프리카 북부에서 중동 쪽으로 넘어간 지구인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서 이동을 이어갔다.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유럽으로 들어간 지구인들도 있었지만, 동쪽으로 계속 나아가 아시아 대륙으로 흩어졌다. 남쪽 경로를 따라간 지구인들은 오늘날의 인도, 중국, 한반도, 일본, 동남아의 여러 지역까지 나아갔고, 북쪽 경로로 나아간 지구인들은 순록 떼를 몰면서 시베리아 얼음 벌판에서 빙하기의 강추위에 맞서 꿋꿋하게 생존했다. 급기야 2만년 전에서 1만5000년 전 사이 북극해의 얼음산이 늘어나면서 오늘날 베링해협의 바다가 육지로 바뀌었을 때 걸어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물론 그 지구인의 복잡다단한 이동 경로는 지금껏 고인류학계의 논란거리다. 학자들에 따라선 이러한 일반론을 거부하고,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현생 인류가 독자적으로 생겨났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현생 인류의 발생에 관해선 그 기원이 하나냐, 둘 이상이냐를 두고 여전히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 하나의 조상인가, 여러 조상인가?

지구인의 조상에 관해선 단일기원(single origin) 이론과 다수기원(multiple origin) 이론이 맞서고 있다. 오늘날 지구인들이 모두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공동 조상의 후손들인가? 아니면 20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생겨나서 지구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갔던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가 각기 다른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했는가? 이 논의에는 민감한 정치적 함의가 담겨 있다. 일례로 14억 인구의 중국은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일당독재의 국가다. 시진핑 총서기는 10년 전부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쳐왔다. 이때 중화민족이란 현재 중국에 거주하는 56개 각개(各個) 민족을 다 아우를뿐더러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5000만~6000만의 중국계 이민자들까지 포함하는 종족적 개념이다. 이에 부응하여 중국학계는 베이징원인(原人)을 중화민족의 공동 조상이라 주장하고 있다.

1921년 스웨덴 고고학자가 요한 안데르센(Johan Gunnar Andersson, 1874-1960)이 베이징 팡산(房山)구의 저우커우뎬(周口店) 동굴에서 베이징원인의 화석을 발견했다. 이후 1930년대까지 베이징원인에 관한 연구가 이어졌다. 40여 명의 호모에렉투스가 남긴 200여 구의 화석을 찾아냈다. 그중에는 다섯 개의 두개골도 포함돼 있었는데, 1941년 중일전쟁의 포화 속에서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현재는 원본은 이미 사라진 채 그 복사본만이 덜렁 남아 박물관에 전시돼 있을 뿐이다. 오늘날 중국의 대다수 고고학자는 호모에렉투스를 아시아인종의 조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이 "중화민족"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중국공산당의 정치적 의도를 반영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중국 학계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전 지구의 지구인들이 모두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같은 조상의 후손들이라면 그 정치적 함의는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0여 년 지구인들은 "민족주의(nationalism)의 시대"를 살았다. 19세기 초 유럽에서 일어난 민족주의는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만약 모든 지구인이 공동 조상을 갖는 형제자매들이라면 민족이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류의 발생에 관한 단일기원 이론은 19~20세기 지구인의 의식을 지배했던 막강한 민족주의의 주술에서 지구인을 해방할 수 있는 탈(脫)민족적 지구주의(globalism)의 이론적 뿌리가 된다. 당신은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민족인가, 인류인가?

◇ 문명은 왜, 어떻게 발생했을까?

이제 "지구인의 세계사"는 본격적으로 문명의 발생에 관해서 논하려 한다. 외계인의 눈으로 본 지구인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불과 수만년 동안 지구 전역으로 퍼져나가 대자연을 정복하고 파괴해 온 호모사피엔스의 맹렬한 활동을 외계의 고등 생명체는 무엇이라 평가할까? 오래전부터 외계인 미도가 내게 던져 온 질문이었다.

"불과 1만여 년 전 지구인들은 자연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혁명을 감행했다죠? 지구인들은 숲을 태워 화전을 일구고, 공격적으로 벌목으로 민둥산을 만들고, 제방을 쌓아 물길을 틀고, 땅을 갈아 농지를 닦았다죠. 인류의 긴 역사에선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불과 1만년 전 광폭하게 몰아쳤을 뿐인데, 오늘날 지구의 모습은 인간의 터전으로 거의 완전하게 뒤바뀌어 있는 듯해요. 지구인들은 어떤 이유에서 무엇을 위하여 그토록 과격한 문명화의 길을 가야만 했을까요?"

실로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지구인을 제외하면 그 어떤 동물도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는다. 제아무리 사나운 맹수라도 굶주린 배만 채우고 나면 동면하듯 고요한 휴식에 들어간다. 모든 동물에겐 개체의 보전과 종족의 번식 이외의 그 어떤 사특한 욕망도 없다. 무위자연의 세계에서 생존의 법칙을 따라 대대로 생명을 이어갈 뿐이다.

그들과 달리 지구인들은 낯선 땅으로 나아가서 전 지구를 정복하고 좋은 땅을 식민지로 삼아 정착지로 개발하는 지극히 비자연적인, 지독히 인공적인 문명화의 일로를 걸어갔다. 다른 짐승과는 달리 지구인들은 식욕과 성욕을 채우고 나면 소유욕, 지배욕, 과시욕, 명예욕, 권력욕 등등 더 큰 욕망의 사슬에 걸려들곤 한다. 욕망의 중독증에 빠진 지구인들은 진정 욕계(欲界)의 수인(囚人)들이 아닌가? 지구인의 불타는 욕망을 빼고서는 지구인의 역사를 쓸 수는 없다. <계속>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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